편안한 마음이 건네는 문장의 온기. (다독임 / 오은)

2020. 12. 3. 01:09카테고리 없음

 

 






몇 년간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가열차게 독서를 하고 있다. 그중에서 산문집은 여러 번 나의 마음을 울린다. 지난 1년간 독서토론과 논제를 배우며 글쓰기 책들도 두루두루 읽고 있는데 나는 ‘각잡고 글쓰기’ 책 보다 산문집에서 더 많은 영감과 동기부여를 받는다.

물론 글쓰기 책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대단한 작가들이 전수해주는 노하우는 읽으면서도 내가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될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노하우와 동기부여는 전혀 다르다. 혹시나 싶어 여러 산문집을 읽어봤지만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편안함’이다. 무엇을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 그것은 편안함에 있었다.


작정하고 글쓰기를 공부한 경험은 없지만 논제를 다루고 토론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글쓰기를 권유한다. 몇 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적도 있다. 주제를 정해주는 글쓰기, 자유로운 글쓰기. 서평 쓰기. 글쓰기 안에서도 종류는 다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글쓰기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편안함에서 나오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꽉 닫혀있는데 뭘써. 쥐어짜는 마음에서 뚝뚝 떨어지는 마음은 정말 고집스럽다.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속내가 보인다. 문을 안 열어주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산문집의 글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나올 수 있는 글. 그런 글에서 저자의 솔직한 마음이 비친다. 여러 산문집을 읽다 보니 부족하지만 식견도 조금씩 생겨났다. 어떤 글은 깜깜하다. 솔직하지 않은 글이 주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작가가 마음을 활짝 열고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은 공감을 초월하여 나의 경험을 이끌어낸다. 나는 그 경험을 꺼내보며 작가와 소통한다. 그런 면에서 오은의 산문집 <다독임>은 공감을 넘어 위로를 주었던 책이다.


그동안 몇 번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다가 여러 번 실패를 맛보았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끈질기게 매달리는 성격이라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없는, 하기 싫은 영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산문집을 읽으며 깨달았다. 글을 쓰기에 앞서 섬세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과 내 마음을 잘 돌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이런 것도 글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이걸 한번 써봐야겠어요!’라는 결심이 되는 과정. 그 결심이 실제로 쓰는 행위로 연결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이, 마침내 아무것 이상이 될 수 있을 것”(p.259)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 어떤 글쓰기 책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동기부여를 선물로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글쓰기와 조금은 친밀해진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 부족하거나 과한 것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씀씀이가 과하면 지갑이 비고 말이 과하면 실수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듯, 마음 또한 상대에게 너무 많이 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마음이 과하면 주는 사람도, 그것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마음에 무게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71)





이상함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놀랍고 색다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어쩌면 시시각각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 뒤,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용인하지 않는 이 사회에 더욱 절실한 말이 아닐까. (p.77)




분명한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질문 역시 점점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묻는 것이 두려워질수록 삶은 생기를 잃는다. 질문이 없는 삶은, 질문이 없다는 점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스스로의 내일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절로 생겨나던 무수한 질문 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열심히 꿈을 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p.107)





여행의 장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 견문을 넓힌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며 볼 수 없는 것, 바로 그 현장에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입을 연 사람에게 풍경이 하나의 추억이 되듯 말이다. (p.175)




초심으로 돌아간다. 해가 바뀌어야 1월이 찾아오듯,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을 꿈꾸고 있다. 막연하거나 불확실할지언정, 꿈을 꾼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p.181)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은 그 사람을 둘러싸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는 일에는 늘 신중해야 할 것이다. 돈을 쓰는 일보다 마음을 쓰는 일에, 그 마음을 고이 담아 시간을 쓰는 일에. 시간을 잘 쓰면 그 시간이 기억에 남기도 한다. (P.222)




상실감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사람의 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길 가다 거센 바람이 불 때,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 무슨 징조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질 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은 망연해진다. (p.229)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져서 섣불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 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다.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아파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p.231)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덜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빽뺵해서 빛살 한 점 들이치지 못했던 일상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더는 일은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옥죄고 위협하고 지우려 하는 것들을 덜어내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어 있는 상태여야 채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절박한 것이, 꼭 필요한 것이. (p.246)



오늘도 아무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보잘것없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무것 말이다. ‘이런 것도 글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이걸 한번 써봐야겠어요!’라는 결심이 되는 과정이 그 속에 있다. 물론 그 결심이 실제로 쓰는 행위로 연결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이, 마침내 아무것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259)